‘국정 운영’이란 수레의 두 바퀴를 차지한 당정(黨政)의 미묘한 신경전은 어느 정권에서나 있었다. 대통령은 20~30년 후를 내다보고 정책을 구상하는 반면 당은 당장 눈앞의 선거에 매달려야 하는 탓이다. 과거 대통령이 여당 총재(대표)를 겸직하던 시절에는 청와대가 여당에 거수기 역할을 지시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당정분리 방침으로 권력구조는 변화를 맞는다. 대통령이 당내 상황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약속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정분리가 기대와 달리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당정분리 원칙에 강한 집념을 가졌던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지만, 원칙에 따라 행사 참석은 물론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지도부 총사퇴로 시끄러웠을 때도 “당정분리 원칙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는 약속일 뿐 아니라 정치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중요한 원칙”이라며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집권 중반기 들어 당과 청와대가 제각각 움직이는 상황이 이어지자 폐해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9월 15일 언론사 논설위원 간담회에서 “당정분리는 당에 대한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당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는 대통령이 효율적 제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얘기한 것. 결국 노 전 대통령은 퇴임 6개월여 앞둔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 수여식에서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고,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라며 “앞으로 당정분리도 재검토해 봐야 한다”며 방침을 수정하기로 한다. 당정분리가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의 책임정치라는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실감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7·14 전당대회’ 다음날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당이 공격하면 정부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며 당·청 간 호흡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2015년 6월 당 지도부와 극심한 충돌을 겪었다.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에 수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켰다. 박 전 대통령은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며 유 원내대표를 직격했다. 친박계 의원들의 사퇴 압박이 이어졌고 유 원내대표는 직에서 물러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당정분리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는 대선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참여정부 때 당정분리가 우리 현실에 맞지 않았다”며 “오히려 당정일체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공천이나 당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정책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부연했다. 2018년 9월 1일 당·정·청 전원회의에서도 “당·정·청이 일체감 가지고 국정의 동반자로 함께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높은 지지율로 임기 말까지 존재감을 드러냈던 문 전 대통령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정책을 두고 당과 충돌하기도 했다. 특히 2021년 12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종부세 완화, 공시지가 현실화 등을 놓고 ‘친문 대 친명’ 구도로 갈등이 번졌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부동산 실패는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했다”고 언급해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말 재난지원금,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을 놓고 빚어진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민주당 간의 갈등에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금은 국회의 시간”이라며 중재에 미온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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